부모님은 산서랑 설날에 요양병원에 오셔서

 

©KIMDAE JEUNG,출처 Pixa bay 부모님께 설날에 요양병원 부모님을 뵙고 와서 호미숙 2020 경자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의미있는설과주말까지이어지는설연휴기간친척들과즐거운시간보내시길바랍니다.
호미는 설날 이른 아침에 친정에서 형제가 모여서 요양병원에 계시는 부모님을 만나고 왔어요친정어머니는 치매와 노환으로 6년째 입원했고 친정아버지는 노환으로 1년째 입원했어요.

막내딸도 못 알아보는 엄마, 막내딸 보고 싶다던 아빠, 두 분 다 말을 못해 아빠는 글로 소통만 해요.

오늘 설은 특히나 가슴이 막히는 날이네요.말 한마디 못하고, 꼼짝 못하고, 눈만 흐린 어머니, 초롱초롱한 눈으로만 대화하는 아버지, 눈물을 참으며 울음을 터뜨렸죠.장로형의 기도를 듣는 아버지는 무표정하게 바라보고만 있어요.


올해 96세인 어머니. 93세의 아버지로서 오랜 고생 끝에 쇠약해진 모습으로 만들 수 있는 일은 손을 잡는 수밖에 없었어요.아버지가 그러던 중 병원을 옮긴 것을 알고 죽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썼는데 왜 눈물이 안 나겠습니까.붓이 나른해서 읽지 못하고 혹시 죽을 먹고 싶다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가재를 써주시느라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며칠 전부터 그토록 막내를 만나고 싶어 했는데도 노쇠한 몸의 손가락 끝에서 전해오는 훈훈한 온기에 힘을 주었는데, 그 건강한 모습은 어딘가 약한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아버지의 말없는 의미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막내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는지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힘껏 잡은 손끝으로 힘내라는 것 같았어요.( ´ ; ω ; ` )
어릴 때는 부모님 뜻에 반항하기도 했어요.아드님 시절의 첫사랑으로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결혼 후에는 화목한 가정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이 아버지를 일찍 여의니 부모님께는 불효하지 않았어요.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악착같이 생활전선을 달리다 보니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는 효도를 못하고 58세에 부모님을 찾아뵙다 보니 막내딸도 분간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큰 사랑이었어요.14세 때부터 부모님을 떠나 홀로 생활할 때 큰 산더미 같았던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용돈을 드리고 막내가 원하는 건 다 하라고 하면서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어요.지난해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날까지 붓글씨를 써 주셨어요.아버님의 기록하는 습관, 쓰는 재능을 물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골에 어울리지 않게 멋쟁이 엄마는 뒷마당의 장독대 같은 사랑이었어요.농촌에 살면서도 누구보다 멋지고 깔끔했습니다.학교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자 당당하게 엄마도 동행했습니다.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더 따르던 막내딸이 얼마나 야속했는지, 뒤늦게 얻은 딸을 대학교수로 시집 보내고 싶어 했는데 사랑을 찾아 떠난 막내딸이 얼마나 억울했던가.
게다가 서른네 살에 젊은 막내딸이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막내를 보면 늘 울었습니다.그런 어머니가 보고 싶지 않아서 친정을 더 찾지 않고 있습니다.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동시에 울어야 했고 아픈 삶의 현실이 싫어 엄마를 더 피했어요.막내딸에게 욕심을 부린 건 사랑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이제 병상에 누워 아무도 모르게 6년, 시골 마을에서 가장 예뻤던 어머니의 얼굴에는 검은 꽃이 피고 앙상한 뼈에 몸이 굳어 살만 남고 깊은 숨을 내쉬며 잠이 듭니다.엄마, 막내 미숙이 왔어요. "귀에 대고 말하자 힘이 없어서 한쪽 눈만 살짝 열어 여러번 끔벅이고 다시 눈을 감고 푹 잠이 듭니다.
어머니는 딸을 볼 때마다 말씀하셨어요.예전 고생을 회상하며 비디오테이프 돌리듯 시집살이를 할 때부터 시집살이를 했다는 얘기, 또 그 얘기냐고 투덜대며 발끈해서 듣기 싫다는 말도 하더군요.이제는 그런 잔소리할 엄마가 없네요.
오늘 저희 어머니는 욕창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되어 누워 있었습니다.편안하게 눕지 못하고 손가락이 굳어 휴지를 움켜쥔 모습에 58세가 된 막내딸은 울음을 참았습니다.
어머니는 3층에, 아버지는 2층에 다른 방에 누워 계셔서 두 나이에 이렇게 마지막을 헤어지셨네요.두 분께서 미리 이별 준비를 하시나요?
효도 할 수 있을 때 하라고 했는데, 어머니, 솔직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걱정을 끼치기 싫었어요 ","항상 건강한 여자 멀쩡하처럼 밝게 살것처럼 보이면 어머니를 만나면 위용단처럼 다정하고 막내딸 잘 살"라고 자랑했습니다.
어머니가 내 나이였을 때 막내는 스무 살 된 어머니가 무릎이 아프다며 절룩거리며 들판에 나섰을 때도 그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어요.막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면서 무릎이 아파 세월을 두고 엄마의 거울을 보는 것 같아요.지난 세월의 사진을 보면 어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막내입니다.
엄마, 저도 남들처럼 엄마한테 제가 힘든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하지만 내가 선택한 사랑이었다. 하늘이 빨리 갈라놓아 큰 죄가 된 듯 어머니에게 거짓으로 항상 웃는 모습만 보였어요.
엄마, 제가 혼자 24년 동안 두 아들을 키우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제 운명처럼 숙명으로 오로지 저 혼자 해결하려 했습니다.7형제 중 막내였지만 응석도 부리지 않았고 형제들에게도 힘들거나 아픈 이야기 없이 혼자 살아남으려고 눈물을 삼켰다.
오늘 엄마가 나를 알아보고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다면 엄마 품에 안겨 소리내어 울고 싶었어요.두 아들을 이렇게 키우고 어머니가 기대하던 딸을 이렇게 잘 헤쳐 나갔다는 자랑도 하고 싶었어요.그런데도 어머니는 체온을 유지한 채 의식 없이 흐릿한 초점의 눈과 마주칩니다.
병원을 떠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병상에 누운 부모님의 사진을 뒤적이며 연방 눈물을 흘렸습니다.건너편 승객이 보고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내릴 역을 스치고 몇 정거장을 지나쳐 서둘러 내렸어요.
엄마, 아빠, 제 딸은 오늘 너무 많이 울었어요.설날 의미로 오늘은 부모님께 드리는 마음을 전하는 겁니다.뒤늦게 들어와서 두 아들과 떡국을 만들며 열심히 살아보자고 끌어안고 또 울었습니다.
엄마, 아빠부디 더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 설날에 요양병원 부모님 뵙고 와서 #설날 #요양병원 #부모님 #부모님편지 #부모님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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